2022. 6. 22. 08:19ㆍ행사정보
천년의 시간을 꽃피우다 조선왕조 최고의 통치기관 전라감영 둘러보기
전주 한옥마을의 아기자기한 멋에 빠졌다면, 하루는 전라감영에 들려 ‘탁 트인 공간’의 여유를 느끼는 것도 좋다. 최근 복원된 전라감영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는 관청이었다. 전라도의 심장부였던 전라감영은 ‘충청감영’과 ‘경상감영’과는 달리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전라감영의 규모가 ‘평양감영’ 다음으로 컸다고 하니 위세 또한 남달랐을 것이다. 선화당의 널찍한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답답한 일상에 지쳤던 마음도 뻥 뚫린다.
전라감영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4시, 7시에 문화관광 해설사와 함께하는 정기 해설 투어(무료)가 있어 선화당과 관풍각에 대한 의미 있는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전라감영을 호젓하게 걸으며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가 볼까?
호남의 중심 전라감영에 가다
전라감영 입구에는 전라도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지역이었는지 보여주는 비석이 새겨져 있다.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로 진을 옮긴 후 임금께 올리는 장계에 이 말을 썼다. ‘전라도는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전라도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말이다.
내삼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멋진 팔작지붕의 선화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전라감사가 집무실로 쓰던 건물이다. ‘선화당’이란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는 뜻이니 이곳은 전라감영의 심장이자, 조정의 파견 사무소였다. 감사는 이곳에서 행정·사법·군사의 업무를 보았다.
선화당 앞 섬돌 아래 왼쪽(동편)에 가석이 있고 오른쪽(서편)에는 폐석이 세워져 있다. 가석은 죄인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표석이고 폐석은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신문고 역할을 한 표석이다. 나는 길 오른쪽에 돌기둥으로 서 있는 폐석 앞에 서 보았다. 이 돌 앞에 서 있으면 선화당에서 관원이 내려와 억울한 사연을 들어준다고 하니, 요즘의 답답한 사연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선화당 앞에 놓인 측우기는 행정기관으로서 전라감영의 면모를 보여준다. 전라도에 내리는 비의 양에 따라 나라의 한해 살림이 결정되었으니 강수량을 기록하는 것은 지역의 수령으로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전라감영은 특정한 건물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객사를 비롯하여 관풍루, 매월당, 청연당, 진남루 등 선화당을 중심으로 지어진 수십 채의 건물들이 전라감영이자 곧 조선의 통치 시스템이었다. 호남의 중심이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과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가 있고, 왕조실록이 보관된 전주사고까지 있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과거 이 자리에 전북도청사가 있었고 경찰서가 있었던 것도 이 자리가 가진 의미를 보여준다.
전라감영의 심장, 선화당을 디지털로 만지다.
선화당 오른쪽 방에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고증한 전라감영의 옛 모습이 디지털 영상과 배우의 음성으로 복원되어 있다. 한밤에 듣는 배우의 음성은 실감 나고 군졸들의 표정은 해학적이다. 예전에는 선화당 안에서 ‘곤룡포를 입는 체험’과 관풍각 아래에서 ‘부채를 만들고’ 전주 ‘한지에 편지를 쓰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내아는 감사 가족이 살았던 살림집으로 선화당 북쪽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전라감영 천년의 역사와 건축양식을 체험을 할 수 있는 반응형 서책과 VR이 있다. 반응형 서책은 전라감사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을 디지털로 구현한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내용이 바뀌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면 감사가 관속들에게 걸어가 일을 시킨다. 디지털로 기록 속의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VR은 조이스틱으로 감영의 일상을 상상으로 가능하게 한 것인데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폐쇄되어서 아쉬웠다.
내아 뒤편에는 잡귀를 물리친다는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이 나무는 200년간 해마다 여름이면 흰 꽃을 가득 매달고 전라감영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았다. 햇볕 좋은 날 회화나무 가지엔 바람의 무늬가 파도처럼 새겨지고 그 아래를 감사 부부가 되어 걸어보리라.
서편 광장 쪽으로 가니 윈스케이프(Windowscape) 체험공간이다. 윈스케이프는 신체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모션에 따라 설명해 주는 기계로, 순서에 따라 감사를 보좌하는 이들이 머물렀던 통인청, 선자청, 인출방의 역할을 소개한다. 통인청은 잔심부름과 예약을 담당했던 곳으로, 전주 대사습놀이를 통인청이 주관했다고 한다. 선자청은 접혔다가 죽 펴지는 합죽선을 만드는 장인의 공방인데 ‘지소에서 만든 질 좋은 한지로 임금께 진상하는 부채를 만든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부채를 만드는 장인의 움직이는 모습이 화면에 보인다. 인출방은 인쇄를 담당한 곳으로, 전주는 좋은 종이를 만들어내는 장인이 있었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완판본’이라 불렸던 책을 유통했던 전주의 전통을 보여준다.
달빛 아래 걷는 전라감영
매일 저녁 7시에 달빛 산책이 이뤄진다. 기와지붕에 달빛이 내려앉은 고궁을 걷는 기분으로 전라 감사가 걸었던 길을 걷는다. 달빛 아래 전라감영을 거니는 특별한 기분을 느끼려면 전주에서 하룻밤 정도는 쉬었다 가길 추천한다.
한밤에 다시 찾은 선화당은 과거를 걷는 타임머신 같다. 선화당 안에는 외국인을 맞이한 전라감사의 모습이 디지털 영상 병풍으로 펼쳐진다. 19세기 전라감영의 풍경이 손님을 환대하는 잔치상으로 그려져 있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소나무 기둥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위로 도시의 하늘에 먹빛으로 번지는 한옥 지붕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달빛 어린 밤공기에 은은한 소나무 향이 날 것 같다.
전라감영을 나와 전주천변을 향해 걷는다. 완산교 교차로까지 조성된 ‘걷기 좋은 길’은 5월이 되면 천변 너머 초록바위에 이팝나무 꽃이 만발할 것이다. 전라감영은 조선이라는 500년 된 건물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밤이다.
위치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55
운영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21:00 / 동절기(11월~2월) 09:00~18:00
※ 코로나19 또는 기상조건에 따라 운영시간이 단축될 수 있음
'행사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실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승광재 (0) | 2022.06.30 |
---|---|
보물 같은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전주 동네 탐방! (0) | 2022.06.27 |
전주 웰리스여행(전통매듭 체험) (0) | 2022.06.22 |
전주 웰니스여행(고무신 아트) (0) | 2022.06.22 |
순창 향가유원지 (0) | 2022.06.20 |